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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 서촌을 유람하다, 서촌별곡


관동팔경을 유람하며 우리나라 가사문학의 백미라 불리는 ‘관동별곡’을 지은 송강 정철이 ‘이곳’ 태생이다. 조선시대 진경산수화라는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한 겸재 정선도, 조선 최고의 명필로 불렸던 추사 김정희도 ‘이곳’에 살았다. 인왕산 동쪽 기슭에 자리 잡은 ‘서촌’ 얘기다. 으리으리한 한옥이 밀집해 있기로 유명한 ‘북촌’의 명성이야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그에 비하면 ‘서촌’이라는 이름은 조금 낯설다. ‘서촌’은 경복궁 서쪽에 위치한 마을을 가리키는 별칭이다. 효자동, 사직동, 통의동, 통인동, 청운동, 체부동, 필운동, 누상동, 누하동, 옥인동, 신교동, 창성동, 궁정동 등 모두 13개 동을 아우른다. 

                    
                
 

‘서촌’ 아닌 ‘웃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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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촌'이라는 이름은 경복궁 서쪽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데서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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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촌'은 세종대왕이 탄생한 곳이라 하여 '세종마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살던 사람만 살고, 아는 사람만 알던 ‘서촌’이 도심 속 ‘히든플레이스(숨은 명소)’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불과 2, 3년 전의 일이다. TV 프로그램과 영화 등 미디어에 잇따라 노출되며 자연스럽게 마을의 이름이 알려졌다. ‘서촌’이라는 이름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그 유래를 정확히 알 수 없다. 경복궁 서쪽에 있어 ‘서촌’이라 부른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지만, 관광명소로 이름을 알리게 된 ‘북촌’의 그것을 따왔다는 주장도 있다. 종로구청에서는 이곳에 세종대왕이 난 터가 있다고 하여 ‘세종문화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이곤 문화행사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이름은 동네 주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사실 이곳에서 오래 산 어르신들에게 가장 익숙한 마을의 이름은 서촌도, 세종문화마을도 아닌 ‘웃대(上村)’다. 청계천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고, 인왕산의 동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여 ‘윗동네’라는 뜻으로 불렀다는 설도 있다. ‘웃대’라는 명칭이 사라진 근대 이후에는 사직동, 체부동, 필운동 등 구체적인 동네 이름으로 불러왔다. 그러니까 ‘서촌’이라는 이름은 이 지역에 살지 않는 이방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조차도 낯선 이름인 셈이다. ‘서촌’은 그렇게 지역 주민들도 모르는 사이, 어느 순간 ‘서촌’이 되어 있었다.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가 사랑한 수성동 계곡

 
  • 인왕산 자락에 위치한 수성동 계곡은 예부터 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의 사랑을 받았다.

서촌의 역사는 18세기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촌에 조선시대 왕족이나 권문세가들이 모여 살았다면, 서촌에는 주로 의관이나 역관, 예술가 등 중인들이 모여 살았다. 당시 인왕산과 백악산, 옥류동천과 백운동천 등 명산과 하천으로 둘러 싸여있던 서촌은 사계절 경관이 수려하여 도성 속에서도 이름난 경승지로 손꼽혔다. 이 때문일까. 서촌에서는 유독 뛰어난 화가와 시인 등 예술가들이 많이 났다.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라는 우리 고유의 화풍을 개척한 겸재 정선(1676~1759)이 서촌에서 살았던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나라 국보 제216호로 지정된 정선의 대표작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도 서촌을 배경으로 그려졌다. ‘인왕제색도’는 인왕산 기슭에서 시작되는 수성동 계곡과 비에 젖은 인왕산 바위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비온 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골짜기의 모습을 농묵으로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명필로 손꼽히는 추사 김정희(1786~1856) 역시 수성동 계곡의 경관을 바라보며 ‘수성동 우중에 폭포를 구경하다(水聲洞雨中觀瀑此心雪韻)’라는 시를 남긴 바 있다. 이처럼 조선시대 예술가들이 각별히 여겼던 수성동 계곡은 안타깝게도 지난 2012년까지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1971년 무분별한 도시 개발이 진행되며 그 자리에 옥인시범아파트 9개 동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옥인시범아파트는 수성동 계곡뿐만 아니라 인왕산의 배어난 풍경까지도 거대한 철골 구조물 뒤로 모두 감춰 버렸다. 서울시가 종로구와 손을 맞잡고 거액의 예산을 들여 옥인시범아파트의 철거를 결정한 것은 지난 2009년의 일이다. 옥인아파트가 철거되자, 마침내 그 자리에는 수성동 계곡의 암반이 모습을 드러냈다. 겸재 정선의 그림은 당시 계곡을 복원하는 데 있어 커다란 도움이 됐다. 이 과정에서 시멘트에 묻혀 있던 기린교도 발견됐다. 

계곡의 복원을 마친 지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수성동 계곡은 서촌 주민들의 소중한 휴식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계곡 주변으로는 산책로가 보기 좋게 정비됐고, 이곳을 찾은 주민들이 쉬어갈 수 있는 벤치 등도 조성됐다. 복원 과정에서 다소 인공미가 가미되긴 했지만, 수성동 계곡의 풍경은 여전히 정선의 그림처럼 운치 있다. 낡은 아파트가 사라진 자리에서 다시 만나는 조선시대 계곡이 반갑기만 하다. 
 

 

근대 문인과 화가들의 주거지

 

근대 들어서 서촌은 문인과 화가들의 주 활동 무대가 된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윤동주와 이상, 노천명, 서정주 등 문인과 박노수와 이상범, 이중섭 등 유명 화가들이 서촌에서 지냈다. 그러나 현재 이들이 지내던 곳은 대부분 없어지고, 추후 세워진 작은 비석들만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곳이 아직 몇 군데 남아 있다. 보안여관과 이상의 집이 그 대표적인 예다.
 

 
  • 1930년대 세워진 보안여관은 서정주, 김동리, 이중섭 등 많은 예술가들이 묵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먼저,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4번 출구에서 경복궁 영추문 방향으로 올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보안여관’이 있다. 1930년대 세워진 ‘보안여관’은 지난 2006년 문을 닫기 전까지 80년이 넘도록 운영된 여관이다. 1936년 서정주와 김동리, 오장환 등이 모여 동인지 ‘시인부락’을 펴낸 곳이며, 화가 이중섭이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1960년대 들어서는 신춘문예를 준비하던 문인들이 자주 드나들었으며, 가난한 예술가들이 주로 장기투숙을 했었다고 전해진다. 지난 2010년부터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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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의 집'은 이상이 3세부터 24세까지 살았던 집으로 현재 일부 터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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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의 집' 한쪽 벽면에 이상과 관련된 책들이 꽂혀 있다.

한편, 통인동에는 시인 이상이 3세부터 24세(1912~1932)까지 살았다고 전해지는 옛집 터도 남아 있다. 본래 이상의 큰아버지인 김연필이 살던 곳으로 이상은 이 집에 양자로 들어왔다. 1933년 주택 업자에 팔린 뒤 도시형 한옥으로 개축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철거 위기에 놓였으나, 가까스로 보존이 결정됐다. 현재는 ‘이상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서촌을 다녀가는 이들을 위한 쉼터로서 자리 잡고 있다. 지정문화유산 보존운동을 펼치는 재단 아름지기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관람객들에게 물과 커피 등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이상의 책이 오래 전 이곳에서 시를 집필하던 이상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옛 모습과 현대 모습이 공존하는 서촌

 
  • 2000년대 들어 개발지역에서 제외된 이후, 서촌은 낙후된 동네라는 인식이 강했다.

1980년대 이후 서촌은 옛 동네의 모습을 많이 잃었다. 효자로, 자하문로, 필운대로 등 서촌을 관통하는 3개 도로가 확장됐고 소방도로 등도 새롭게 났다. 2000년대 들어서는 서촌을 재개발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재개발을 두고 주민들의 찬반이 엇갈렸으나, 지난 2010년 한옥보존지구로 결정되면서 재개발은 모두 없던 일이 됐다. 경복궁과 청와대 근처에 있어 건물의 고도제한이 있는 데다 개발까지 제한되면서, 서촌은 자연히 낙후된 동네라는 인상이 깊어졌다.
 
그런데 최근 들어 서촌을 찾는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서촌이 간직한 옛 정취 때문이다. 개발이 제한되며 낡은 채로 방치되어 있었던 것들이 오히려 향수를 자극하는 볼거리가 됐다. 낡은 한옥과 비좁은 골목길,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문화유적들이 이제야 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잊고 살던 우리 삶의 소중한 가치들이 서촌에는 고스란히 녹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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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촌에는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 근대와 현대 등 다양한 시대에 세워진 건물들이 어우러져 있다.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 근대의 모습과 6~70년대의 낡은 간판, 2000년대 들어 세워진 현대식 건물까지 켜켜이 쌓아온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서촌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마주한다. 600여 년이라는 시간을 스펙트럼처럼 펼쳐 놓은 듯한 모습에서는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한 각별한 애정도 생겨난다. 한 도시의 풍경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먼저 만들어진 층 위에 또 다른 층을 쌓아 하나의 풍경이 이뤄진다. 서촌은 그 숱한 층을 품고 있는 곳이다. 각기 다른 시대의 모습이 공존하는 서촌은 서울이 지나온 세월을 느끼기에 최적의 장소다.
 

 

1. 서촌에 가기 전에 북촌을 먼저 들러보세요! 북촌과 서촌의 사뭇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답니다. 
2. 서촌에는 안내소나 안내판이 없어요. 가기 전 인사동관광안내소나 북촌문화센터에서 서촌 지도를 받아가세요!
3. 출출할 땐 전통시장! 서촌에 있는 금천교시장(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과 통인시장에서 우리 시장의 멋과 맛을 보여주세요.
4. 서촌에서는 유독 문인과 화가들이 많이 났는데요. 그들을 잘 모르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미리 작품을 접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5. 서촌의 골목길은 복잡해서 한 번 길을 잘못 들면 헤매기 쉬워요. 편한 신발은 필수예요!

사직단은 조선시대 나라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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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직단은 조선시대 나라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다.
  • 서촌의 골목길은 옛모습을 간직한 채로 남아 있다.
  • 동네에 사는 아이들이 다함께 노래를 부르며 걷고 있다.
  • 형제이발관의 삼색등은 여전히 돌아간다.
  • 영화루는 50년에 걸쳐 삼대가 운영하고 있는 중화요리 전문점이다.
  • '콘브레드'는 효자베이커리의 인기 메뉴다.
  •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세탁소에 왠지 정감이 간다.
  • 서촌에는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상점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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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래블아이 한마디 트래블아이 한마디
서울의 600년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서촌. 삶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서촌이야말로, 외국인 친구에게 한국인의 삶을 보여줄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아닐까요?

트래블투데이 엄은솔 취재기자

발행2015년 02월 04 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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